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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열 사랑방/Good Images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운하

 

스에즈 운하를 성공시킨 프랑스가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가장 단거리인

파나마에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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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 도크식으로 물 수위를 8.5m씩 낮춰 통과하는 선박들

대서양과 태평양의 조수간만의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과

116m의 높은 암반 이 있는 산을 뚫는 일이가장 큰 문제였다.

공사 중 2만여명이 질병, 안전 사고로 죽어갔고

프랑스는 결국 부도를 내고 공사가 중단되면서미국이

다시 인수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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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오후로 나누어 통과하는 파나마 운하, 통과를 기다리는 선박

미국은 전 세계 건설 전문업체 43개를 초빙하여 10년동안

건설하여 1914년에 완공하게 된다.

파나마 운하를 잇는 구역을 미국령으로 만들고 운영권도

확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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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의 괘도 차량이 벽면에 부딛치지 않게 양쪽에서 유도

파나마 운하의 조수 간만차를 해결하기 위해 내륙에 80km

구간을 인공호수로 만들고

양쪽에 각각 3개의 수문을 만들고 계단식 도크를 만들었다.

수문의 높이는 8.5m, 폭 35m, 길이 305m, 12m의 물 깊이 3단 수문을

양쪽에 각각 만들고

전체 수위 26m를 수위를 조절하여 이동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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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항을 중심으로 신도시에 대형 금융빌딩이 즐비

1964년 파나마 한 고등학교에 미국 성조기와 파나마기를

동시게양하지 않고

성조기만 게양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파나마 학생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학생 간에 싸움이 일어난다,

이를 말리려던 군인이 발포하면서 23명의 사상자를 내게 된다.

이 사건으로 파나마 시민의 반미데모로 확산되면서

미국과 파나마 간의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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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항에 정박한 크고 작은 배들이 신도시와 조화

결국 1977년 파나마 또리호스와 미국의 카터대통령간의

협상이 이루어지면서

결국 운하의 모든 권한을 파나마에 이양하고 미국은 파나마에서 완전

철수하게 되었다.

이로서 파나마 운하 소유권은 1999년 완전히 파나마로 넘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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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구시가지에 위치한 바로크 양식의 성당

파나마는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 현재 파나마

운하를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이 공사에 한국의 기업도 참여하고 있다고한다.

한편 미국이 완전 철수한 뒤 운하 도선 전문가가 없던 차에

한국의 전문가 한분이 파나마에 기술을 이전하는데

크기 기여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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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에 고풍스런 빌딩과 파나나 동식물 조각상

파나마는 태평양과 카리브 해를 잇는 운하가 있어 세계물류이동의 중심지다.

인구 320만의 한반도 크기의 작은 나라로

수도 파나마시는 인구 150만명이 모여 사는 국제 금융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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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금융허브, 운하의 도시 파나마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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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정복의 거점기지로 역할을 한 파나마 옛 도시

세계은행이 모두 모여 있는 이곳은 스위스의 은행과 같이 비밀이 보장되어 중남미의

마약 마피아 단이 연루된 검은 돈이 유통되기도 한단다.

태평양 연안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신시가지는 뉴욕의 마천루를 연상한다.

1999년 파나마운하의 운영권이 미국에서 파나마로 이관되면서

최근 파나마는 연 평균 10%의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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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구시가지 중앙광장

파나마는 스페인의 발보아 총통이 취임하면서 식민지로 출발하였다.

세계 40여개 민족이 혼합된

짬뽕문화이지만 미국과 인접해 미국의 문화를 많이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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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견학을 온 파나마 초등학생의 해맑은 모습

당시 파나마 지역이 금과 은이 엄청나게 생산되면서

당나귀 2,000마리가 실어 날랐다하며

성당의 성전을 금으로 장식된 것을 숨기기 위해 흙을 발라

약탈하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파나마는 1519년 남미를 침략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서 올드

파나마를 건설하였다.

남미의 잉카제국을 침략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의 해적 헨리모건이 침략하여 무참히 파괴하였으며

복원하지 않은 채 유적지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파나마 경제를 받쳐주는 2개의 축은 금융 산업과 파나마

운하 운영사업이라 한다.

파나마운하의 하루 물동량은

선박 40여척 연간 15,000척이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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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무서진 성곽을 견학하는 관광객

대형 4만톤급 배가 컨테이너를 보통 4,000개를 싣고 갈 경우

배 하나가 어림잡아

2억5천만원을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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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항 건너보이는 붉은색 대통령 궁 모습

따라서 하루 40척이 지나갈 경우

어림잡아 100억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선박의 경우남아메리카를 돌아 태평양으로 갈 경우 30일이나 걸리지만

운하를 이용하면 13시간이면 완전 통과할 수 있다.

파나마운하의 주변 모습들

 

*출처: 낙원 산 약초
http://cafe.daum.net/paradise4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