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밭에서 먹는 푸성귀는 거의 열무잎과 배춧잎입니다.
씨를 한개씩 심은게 아니라 뿌렸기 때문에 빼곡하니 난 열무를 솎아주고 배추도 솎아서 김치도 담그고 쌈으로 먹고 무쳐서도 먹고 된장국에 넣어서 다양하게 먹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무도 커져서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됩니다.
배추와 무처럼 다양하게 해먹을 수 있는 잎채소는 없는 것 같습니다.
김치는 물론이고 생채, 국거리, 부침개, 샤브샤브, 찜 등 온갖 요리의 재료로 이용됩니다.
가장 서민적인 음식인 된장국에도 들어가지만 최상급의 식탁에도 오르는 게 배추와 무입니다.
방한한 미국 대통령을 위한 만찬에 내놓은 꼬리 곰탕 스프맛을 내기 위해 들어간 게 무이며 함께 놓인 보쌈김치도 배추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싼, 낙원동에 있는 천 원짜리 국밥에도 역시 배추 우거지는 들어가고 그 곁에 놓이는 깍두기도 무로 만듭니다.
최고의 밥상과 최저의 밥상에 다 등장하는 배추와 무입니다.
배추와 무가 이런 식재료가 될수있는 건 소금에 절여지기도 하고 펄펄 끓는 물에도 삶아지는 채소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배추보다 훨씬 비싼 채소에 속하는 양상치는 샐러드의 재료로밖에 쓸수 없습니다.
익혀서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샐러리나 파슬리 비트 같은 채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개 고급채소일수록 활용도가 좀 낮고 값싼 서민채소는 활용도가 높습니다.
이런 채소들의 특징은 배추와 무처럼 잘 죽어지는 것이지요.
소금을 치면 숨이 팍 죽고 삶으면 물렁물렁 해집니다.
이들은 죽어서 음식 맛을 살리는 겁니다.
죽지않는 채소들은 그저 아삭아삭한 맛만 내지 다양하고 깊은 맛을 못냅니다.
사람도 잘 죽는 사람이 맛이 있는 사람이 됩니다.
자존심의 숨이 죽지않은 사람은 편하게 대하기가 힘듭니다.
고집이 절여지지 않은 사람은 주위 사람을 힘들게 만듭니다.
편견이 죽지 않은 사람은 불화를 조장합니다.
교만에 소금을 치지않은 사람은 회개를 못합니다.
말씀의 소금과 성령의 불로 죽어진 인생이라야 은혜의 식탁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최고의 식탁에 올라도 교만하지않고 최저의 식탁에 놓여도 찌질하지 않은 배추와 무처럼 잘 죽어지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 |